[한계돌파] 최영철 사나 회장 "아프리카에선 삼성·현대차보다 우리가 더 유명하죠"

입력 2015-05-18 21:06   수정 2015-05-19 10:10

해외서 꽃피우는 기업가 정신
(2) 가발 하나로 아프리카 정복한 최영철 사나기업 회장
가발시장 40% 점유…사나, 케냐의 국민기업 '우뚝'

빈민촌을 기업도시로
제2공장 짓고 4000명 고용
인구 1만5000명 루이루 마을이 기업 몰리는 5만명 산업도시로

고품질 맞춤형 가발로 승부
사업 잘되자 현지인들 집중견제
모발 특성 고려해 150여종 개발…케냐 최대 유통업체 추격 따돌려



[ 정영효 기자 ]
지난 4일 점심 무렵에 찾아간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 외곽에 있는 루이루(Ruiru) 지역의 사나기업 제2공장. 현기증이 날 것 같은 뙤약볕 속에서 20~30여명의 부녀자가 공장 앞 비포장도로에 늘어서 있었다. 굳게 닫힌 공장 정문에 큼지막하게 ‘일자리 없음(no job vacancy)’이란 간판이 붙어 있었다. “필요한 임시직 근로자를 아침에 모두 뽑았는데도 혹시나 해서 무턱대고 기다리는 현지인들”(최용석 사나기업 상무)이라는 설명이었다. 손병일 KOTRA 나이로비 무역관장은 “사나기업의 급여가 다른 공장보다 훨씬 높아 현지인이 서로 취직하려 한다”고 말했다.

검은 대륙?유명해진 한국 가발회사

사나기업은 1989년 최영철 회장(60·사진)이 설립한 아프리카 최대 가발회사다. 아프리카에서만 케냐 탄자니아 에티오피아 잠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모잠비크 짐바브웨 앙골라 우간다 등 9곳에 공장을 두고 있다. 한국에도 공장(경기 양주시)이 있다. 지난해 매출은 1000억여원. 이 회사가 만드는 가발 종류만 150여종에 이른다. 아프리카에서 판매되는 가발의 40%가 사나기업에서 만든 것이다.

사나기업의 위상은 케냐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루이루 지역은 사나기업 제2공장이 입주하기 전인 2010년만 해도 인구 1만5000명의 빈민촌이었다. 사나기업이 공장을 세워 4000명 이상을 고용하겠다고 하자 전국에서 근로자들이 몰려들었다. 현금자동입출금기(ATM) 하나 없던 곳에 은행 세 곳이 들어섰다. 사람들이 갑자기 몰리면서 방을 구하기 힘들게 됐다. 다른 기업이 하나둘 뒤따라 들어오면서 루이루 마을은 이제 인구 5만명의 산업단지가 됐다.

개인 미용용품을 취급하기 때문에 인지도도 높다. ‘케냐에서 사나를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이 있다. 손 관장은 “동아프리카에선 사나기업이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보다 더 유명한 한국 회사”라고 소개했다. 현지인에게 “사나기업을 아십니까” 하고 물으면 “아, 그 가발회사 말씀이죠”란 답이 금방 나온다.


“아프리카에 흑인이 사는 한 가발사업은 무조건 된다”

최 회장이 처음부터 가발사업을 한 것은 아니다. 사나기업 설립 전에는 섬유무역을 했다. 한국과 케냐를 오가던 그는 케냐에 정착할 결심을 하고 승부를 걸 만한 아이템을 골랐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게 가발이다.

한국에서는 탈모를 커버하거나 액세서리로 쓰이는 가발이 현지에서는 ‘필수품’이었다. 아프리카인의 모발은 빗방울도 스며들지 못할 정도로 촘촘한 곱슬머리다. 1년의 절반에 해당하는 우기엔 머리카락이 자라지 않고 두피 속으로 파고든다. 성가시다 못해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여기에 비듬이 생기고 냄새가 나니 남자들은 보통 머리를 빡빡 밀고 다닌다. 여성은 그러지 못한다. 그래서 찾는 게 가발이다. 날씨가 덥기 때문에 가발을 써도 머리 전체를 덮는 통가발은 사용하지 않는다.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가발에 연결하는 ‘익스텐션(extention)형’이 대세다. 개당 5달러로 통가발(개당 20~50달러)보다 훨씬 싸다. “아프리카에 흑인이 존재하는 한 가발사업은 무조건 된다”는 게 최 회장의 확신이었다. “아프리카 여성의 2대 콤플렉스가 피부색과 모발이라고 합니다. 피부색은 어쩔 수 없지만 모발은 바꿀 수 있지요.”

최 회장의 확신이 곧바로 돈다발을 몰고온 건 아니었다. 통관절차를 밟다 한국에서 들여온 원자재를 몽땅 도둑맞았다. 우여곡절 끝에 공장을 돌려 돈을 좀 모았나 싶었더니 이번엔 무장강도의 희생양이 됐다. 출근길을 노린 납치범들은 최 회장을 어딘지도 모르는 시골길에 놔두고 도주했다. 위기 속에서도 최 회장은 가발만 생각했다.

현지 최대 유통업체 도전 뿌리쳐

사업이 궤도에 올라서도 어려움은 계속됐다. 이번엔 현지인의 집중 견제가 시작됐다. 케냐 최대 슈퍼마켓 체인인 나쿠마트(Nakumatt)의 추격이 특히 위협적이었다. 나쿠마트는 사나기업에 버금가는 규모의 공장을 짓고 중국인 기술자를 데려와 가발사업에 뛰어들었다. 케냐에만 34곳, 동아프리카 전역에 깔려 있는 52개 대형마트(2014년 5월 기준)에서 자체 생산한 가발을 팔면 사나기업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쿠마트의 야심찬 도전은 몇 년 지나지 않아 실패로 돌아갔다. 최 회장은 “가발제조업이 노동집약적인 사업이라지만 자금력과 설비투자만으로 후발주자가 따라올 수 있는 분야는 아니다”고 말했다.

사나기업의 경쟁력은 세계 최고 품질의 원사(가발의 원료) 제조업체인 일본 덴카로부터 확보한 재료를 한국에서 직접 들여온 설비와 부자재로 26년간 만들어온 노하우에 있었다.

에티오피아와 소말리아처럼 흑인이면서도 생머리를 가진 사람들이 사는 지역과 덥고 습한 지역, 고산지대 등 기후에 따라 조금씩 다른 가발을 맞춤형으로 내놓았다. 자금력과 유통망만 믿고 중국기술에 의존한 나쿠마트가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경쟁사들이 나가떨어지자 사나기업의 가발은 더욱 불티나게 팔렸다. “아프리카 여성에게 가발은 마약 같아서 한번 사용하면 멈출 수 없다”는 최 회장의 말대로였다. 26년 전 20세에 사나기업의 가발을 처음 착용한 여성들은 50대가 돼서도 ‘충성 고객’으로 남았다. 10~50대까지 사용연령층이 늘어난 데다 소득 수준까지 높아졌다. 3개월이던 가발 교체주기가 2주로 줄고, 다양한 스타일을 꾸미기 위해 5~6가지의 가발을 구비하는 여성이 늘어났다.

케냐를 제2의 모국으로 여기는 최 회장은 지역에서 각종 기부금을 가장 많이 낸다. 지역 경찰서장과 주지사가 직접 찾아와 “사나기업 덕분에 주민의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범죄율이 줄었다”며 감사 인사를 하곤 한다. “공단 여직원을 위한 유치원과 학교를 지어달라”는 부탁도 받는다고 한다. 케냐, 나아가 아프리카시장을 주름잡은 ‘K비즈니스’의 현장이다.

나이로비=정영효 기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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